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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슬점; >
김예원, 허정원 2인

깊이 보는 정원,
멀리 보는 예원.
그 사이, 이슬점.

허정원, 김예원 작가의 2인전.

허정원은 나무 가까이 다가갑니다.
깎고, 멈추고, 다시 바라보며
결의 방향과 밀도, 상처와 흔적을 따라갑니다.
나무를 자신의 뜻대로 만들어가기보다,
재료가 건네는 저항에 따라 손의 방향을 바꾸기도 하며
그 안에서 자신을 마주합니다.
김예원은 조금 멀리 바라봅니다.
매일 지나던 길,
습기와 빛, 일상의 작은 장면들을 바라보다
익숙했던 것이 문득 다르게 감각되는 순간을 포착합니다.
깊이 보는 시선과 멀리 보는 시선 사이, 나에게 무언가가 비로소 맺히는 지점.
이번 전시에서는 그 순간을
’이슬점‘이라 불러보았습니다.

백로의 시간,
당신의 이슬점은 어디쯤에서 맺힐까요?


2026.09 갤러리세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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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無아닌나
 허정원

 나무는 나를 꾸짖지 않는다. 날카로운 끌이 지나가고 톱에 썰려 깊은 자국이 남더라도 그 충격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무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손을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끌을 부드럽게 받아들이지만, 어느 순간에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도록 손을 멈춰 세운다. 나는 나무를 깎지만, 나무 또한 자신의 결이나 밀도, 단단함으로 나의 속도와 방향을 바꾼다. 조각은 그렇게 서로에게 흔적을 남기며 시작된다.

 나무의 몸에는 지나온 시간이 새겨져 있다. 해마다 겹쳐진 나이테와 뒤틀린 결, 부러진 가지가 아문 자리, 벌레가 지나간 흔적, 불에 그을리거나 썩어 약해진 부분까지. 껍질을 벗기고 표면을 깎아 들어갈수록 감추어져 있던 시간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아무리 깊이 들어가더라도 나무가 지나온 모든 시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내가 나무를 조각하는 이유는 나무를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결국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무와 나는 서로 다른 존재이지만, 살아온 시간과 외부의 영향이 몸에 남고 그로 인해 계속 변해간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나무의 결이나 상처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는 나를 본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덜어낼지, 어디에서 멈추고 다시 시작할지가 손끝에 드러난다.

 나에게 Carving은 이미 정해진 형상을 물질 안에서 꺼내는 기술이 아니다. 한 번 덜어낸 부분은 되돌릴 수 없기에 매 순간 판단해야 하고, 앞선 선택은 다음 손길의 방향을 바꾼다. 깎고, 멈추고, 바라보고, 다시 손을 대는 동안 형태는 조금씩 만들어진다. 나무가 변하는 동안 나 역시 달라진다.
그렇게 조각은 이미 알고 있는 나를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아직 알지 못했던 나를 발견하는 과정이 된다. 나무의 시간 위에 나의 시간이 겹쳐지고, 나무가 지닌 흔적 위에 나의 손이 만든 자국이 더해진다.

 나무를 깎는 일은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가운데 내가 어떻게 ‘나’로 형성되어 가는지를 마주하는 일에 가깝다. 나무를 조각하는 것은 어쩌면 그 변화 속에 머무르며 함께 살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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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원

 세계와 나의 접점에서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불현듯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있다. 굴뚝 위에 앉은 새의 시간이 그렇고, 여름을 맞아 푸르게 물든 이파리를 더욱 푸르게 만드는 습기 찬 시간이 그렇다. 지극히 평범하나 돌연히 새롭게 인식된 순간은 시각과 더불어 공감각적인 신체적 체험을 통해 나를 나와 세계가 만나는 경계 지점으로 이끈다. 그 경계의 공간은 다양한 지각의 기능을 자극해 몽상의 시간 혹은 순수 기억이 부상하는 사유의 시간에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끈다.

 나의 작업은 익숙한 일상 속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고,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고 체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공간 속에서 지각한 다양한 요소들은 작업의 모티브가 된다. 버스에서 내려 항상 지나오던 길과 그 길의 끝에서 걸어가는 사람들, 물에 젖어 반짝이는 바닥과 같은 시각적 요소들을 시작으로 나뭇잎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같은 청각적 요소, 희미하게 느껴지는 후각적 요소들까지. 시각적 지각으로부터 시작해 청각, 후각과 같은 다른 감각들이 기능하며 하나의 공간을 세밀하게 재인식한다.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나를 포함하는 동시에 바라보는 입장으로 만들어 상상력과 사유를 야기하는 원경의 이미지에 주목한다. 멀리 보이는 풍경 이미지는 나를 그 풍경 안에 들여놓음과 동시에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도록 느껴지는 철저한 관찰자적 감각을 부여한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어 멀리서 관조하는 것에 고작인 감각은, 오히려 개인이 그 이미지를 지각하는 것에 열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계속해서 지각되는 이미지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부유하던 상사의 관계에 놓인 순수 기억 속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표층으로 부상한 순수 기억은 개인으로 하여금 외부 세계를 통해 개인 스스로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메를로퐁티는 인간과 세계의 접점, 지각의 순간에서 인간과 세계가 생겨난다고 서술했다. 평범한 일상적 공간이 돌연히 시선을 빼앗아 그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다시금 공간을 탐색하기 위해 다양한 지각의 기능이 작동하여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지각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나는 다시금 개인과 세계가 생겨나는 감각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적막한 순간’이라 지칭하며 이 찰나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조건과 장치들을 탐구한다. 적막한 순간은 시각적 지각 외에도 다양한 공감각적 지각 요소를 주로 하여 나타난다.

 나의 작업에서 표현되는 적막한 순간은 흐릿한 원경의 풍경 이미지로 구성된다. 형태는 명확하게 구별하기 어렵도록 경계를 부드럽게 풀어내고, 색은 주관적 경험을 토대로 개성화된 색을 부여한다. 거기에 더해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이미지와는 모순되는 이미지를 추가함으로 이미 경험을 통해 일상적으로 여겨지는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며 낯선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익숙하나 낯설고, 쉽게 마주할 법하지만 비현실적인 공간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세계와 나, 그 경계에서 세계를 지각하는 순간, 적막한 순간은 신체적 체험이 만들어내는 공감각적 지각의 순간이다. 나는 나의 적막한 작업을 통해 개인의 내면세계를 관조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몽상하는 심리적 공간으로 넘어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의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한 보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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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YE 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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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O H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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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세빈

작품 문의
010 8684 4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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