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세계와 나의 접점에서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불현듯 시선을 빼앗아 가는 것들이 있다. 굴뚝 위에 앉은 새의 시간이 그렇고, 여름을 맞아 푸르게 물든 이파리를 더욱 푸르게 만드는 습기 찬 시간이 그렇다. 지극히 평범하나 돌연히 새롭게 인식된 순간은 시각과 더불어 공감각적인 신체적 체험을 통해 나를 나와 세계가 만나는 경계 지점으로 이끈다. 그 경계의 공간은 다양한 지각의 기능을 자극해 몽상의 시간 혹은 순수 기억이 부상하는 사유의 시간에 들어설 수 있도록 이끈다.
나의 작업은 익숙한 일상 속 풍경이 갑자기 낯설게 다가오고, 조금은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공간을 새롭게 지각하고 체험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 공간 속에서 지각한 다양한 요소들은 작업의 모티브가 된다. 버스에서 내려 항상 지나오던 길과 그 길의 끝에서 걸어가는 사람들, 물에 젖어 반짝이는 바닥과 같은 시각적 요소들을 시작으로 나뭇잎을 타고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와 같은 청각적 요소, 희미하게 느껴지는 후각적 요소들까지. 시각적 지각으로부터 시작해 청각, 후각과 같은 다른 감각들이 기능하며 하나의 공간을 세밀하게 재인식한다.
여러 요소들 중에서도 나를 포함하는 동시에 바라보는 입장으로 만들어 상상력과 사유를 야기하는 원경의 이미지에 주목한다. 멀리 보이는 풍경 이미지는 나를 그 풍경 안에 들여놓음과 동시에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도록 느껴지는 철저한 관찰자적 감각을 부여한다.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없어 멀리서 관조하는 것에 고작인 감각은, 오히려 개인이 그 이미지를 지각하는 것에 열중할 수 있도록 만든다.
계속해서 지각되는 이미지는 무의식의 공간에서 부유하던 상사의 관계에 놓인 순수 기억 속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해 표층으로 부상한 순수 기억은 개인으로 하여금 외부 세계를 통해 개인 스스로에 대해 사유하게 만든다.
메를로퐁티는 인간과 세계의 접점, 지각의 순간에서 인간과 세계가 생겨난다고 서술했다. 평범한 일상적 공간이 돌연히 시선을 빼앗아 그 공간이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 다시금 공간을 탐색하기 위해 다양한 지각의 기능이 작동하여 익숙한 풍경을 새롭게 지각하는 순간을 만들어낸다.
나는 다시금 개인과 세계가 생겨나는 감각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적막한 순간’이라 지칭하며 이 찰나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조건과 장치들을 탐구한다. 적막한 순간은 시각적 지각 외에도 다양한 공감각적 지각 요소를 주로 하여 나타난다.
나의 작업에서 표현되는 적막한 순간은 흐릿한 원경의 풍경 이미지로 구성된다. 형태는 명확하게 구별하기 어렵도록 경계를 부드럽게 풀어내고, 색은 주관적 경험을 토대로 개성화된 색을 부여한다. 거기에 더해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이미지와는 모순되는 이미지를 추가함으로 이미 경험을 통해 일상적으로 여겨지는 이미지가 새로운 이미지로 부각되며 낯선 효과를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익숙하나 낯설고, 쉽게 마주할 법하지만 비현실적인 공간의 이미지가 나타난다.
세계와 나, 그 경계에서 세계를 지각하는 순간, 적막한 순간은 신체적 체험이 만들어내는 공감각적 지각의 순간이다. 나는 나의 적막한 작업을 통해 개인의 내면세계를 관조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거나 몽상하는 심리적 공간으로 넘어가 바쁜 일상 속에서 잠깐의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한 보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을 공유하고자 한다.